막12:13-17,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난주간의 흐름 속에서 마가복음 12장 13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그 마지막 일주일 동안, 종교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책잡으려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권위와 사명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예수님께 와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막 12:14)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매우 교묘한 함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유대 민족의 반감을 사게 되고, 반대로 내지 말라고 하시면 로마 정부에 반역자로 고발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셈을 아시고,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게 하신 후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막 12:16)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막 12:16)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 이 말씀은 단순한 정치적 회피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과 깊이 연결된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권세와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밝히시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고난주간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고,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정립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들 (막 12:13-14) 고난주간이 진행되는 동안 예수님께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반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이었고, 헤롯...

로마서 1장 14절 빚진 자

 빚진 자의 고달픔을 아는 자가 몇이나 될까? 대출이 일반화된 요즘은 수많은 사람들이 빚진 자들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빚진 자는 자발적 대출자들이 아니다. 아니, 꼬박꼬박 빛을 갚을 능력이 되는 사람은 빚진 자의 심령을 잘 알지 못하니다.


고대 세계에서 빚은 무서운 것이었다. 수메르 문명 시대 이자율은 30%가 넘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 가난한 자들의 이자율은 최소 20% 이상이었다. 그런데 놀갑게도 현대의 카드 이자율은 18%이다. 말이 18%지 이자의 이자가 붙어 일년이 넘어가면 200%가 넘기도 한다. 실로 엄청난 이자율이 아닐 수 었다. 이러한 이자율은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상환 능력이 되거나 담보가 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5-10% 정도에서 대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우리나라도 30년 전만 해도 적금 이자율이 18%가 넘었다. 반대로 대출 이자율은 어땠을까? 1970년대 평균 이자율은 23%였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이자율이다. 1965년 예금 이자율이 30% 였다고 믿을까?


요즘처럼 대출 이자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한 달 동안 죽도록 일하고 대부분의 돈을 이자 갚는데 다 쓰고 만다. 몇 년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빚, 정말 무서운 존재다.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로 소개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빚진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 자, 어리석은 자들이다. 요즘말로하면 남녀노소빈부귀천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빚은 복음의 빚이다. 바울은 자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인들은 모두 '빚진 자'(롬 8:12)라고 말한다. 빚진 자는 갚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려 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빚이다.


빚을 졌다는 말은 빚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빚은 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울에게 빚을 준 것일까? 바울은 고후 5:14에서 이런 말을 한다.


  • 고린도후서 5장 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 하나님께 빚을 졌다. 바로 이것이 이방인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기 위하여 바울을 이방인으로 사도로 부르셨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만약 이방인들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은 바울을 사도로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 로마서 1장 5절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 갈라디아서 2장 8절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 딤전 2:6-7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바울이 진 빚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빚'(롬 13:8)이다. 그 빚은 이방인들에게 진 빚이 아니라 하나님께 진 빚이다. 하지만 이방인에게 진 빚이다. 하나님께 진 빚을 갚아야 하는 초조함은 우울하고 슬픈 고통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초조함이다. 받은 사랑이 너무 크기에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빚으로 인해 즐거운 고통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을 소명이라 말한다.

  • 로마서 13장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