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 2023의 게시물 표시

2026년 신년감사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신년감사예배 대표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시간과 계절, 역사와 미래를 주의 뜻 안에 세우시고, 오늘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만물을 붙들고 계신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2026년 새해의 첫 시간을 감사의 예배로 열게 하시니, 그 은혜와 인도하심 앞에 머리 숙여 영광을 돌립니다. 작정하신 뜻 없이 단 하루도 존재하지 않으며, 주의 손이 닿지 않은 일상이 없음을 고백하오니, 이 한 해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시작하게 하옵소서. 주님, 지난 해는 평탄한 날만 있지 않았습니다. 기쁨의 순간도 있었지만, 고난의 골짜기도 있었고, 예기치 못한 슬픔과 아픔 속에서 기도하며 견디던 날들도 있었으며, 때로는 응답 없는 침묵 속에서 주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모두 주의 손으로 붙들려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합니다. 주의 은혜 아니고는 오늘의 감사도 없었고, 주의 인도하심 없이는 우리는 무너졌을 존재임을 믿고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새해 첫 시간, 우리가 가장 먼저 주 앞에 무릎 꿇습니다. 이전의 모든 허물과 연약함을 주께 고백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했던 순간, 말씀보다 세상의 지혜를 따랐던 결정을, 그리고 회개 없이 지나온 시간들을 이 시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덮으시고, 정결한 마음과 새 영으로 새해 첫 걸음을 내딛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사오나, 주께서 이미 앞서 가시며 길을 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2026년이 어떤 해가 되든, 우리가 마주할 사건이 무엇이든,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은 나라와 의이며, 먼저 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음성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로 시작하고 말씀으로 걸으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내는 믿음의 해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가정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배가 살아 있는 가정, 기도가 흘러...

로마서 1장 14절 빚진 자

 빚진 자의 고달픔을 아는 자가 몇이나 될까? 대출이 일반화된 요즘은 수많은 사람들이 빚진 자들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빚진 자는 자발적 대출자들이 아니다. 아니, 꼬박꼬박 빛을 갚을 능력이 되는 사람은 빚진 자의 심령을 잘 알지 못하니다. 고대 세계에서 빚은 무서운 것이었다. 수메르 문명 시대 이자율은 30%가 넘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 가난한 자들의 이자율은 최소 20% 이상이었다. 그런데 놀갑게도 현대의 카드 이자율은 18%이다. 말이 18%지 이자의 이자가 붙어 일년이 넘어가면 200%가 넘기도 한다. 실로 엄청난 이자율이 아닐 수 었다. 이러한 이자율은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상환 능력이 되거나 담보가 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5-10% 정도에서 대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우리나라도 30년 전만 해도 적금 이자율이 18%가 넘었다. 반대로 대출 이자율은 어땠을까? 1970년대 평균 이자율은 23%였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이자율이다. 1965년 예금 이자율이 30% 였다고 믿을까? 요즘처럼 대출 이자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한 달 동안 죽도록 일하고 대부분의 돈을 이자 갚는데 다 쓰고 만다. 몇 년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빚, 정말 무서운 존재다.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로 소개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빚진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 자, 어리석은 자들이다. 요즘말로하면 남녀노소빈부귀천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빚은 복음의 빚이다. 바울은 자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인들은 모두 '빚진 자'(롬 8:12)라고 말한다. 빚진 자는 갚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려 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빚이다. 빚을 졌다는 말은 빚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빚은 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울에게 빚을 준 것일까? 바...

호세아 2:14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광야에서 나눈 사랑의 밀담 호 2: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세아의 결혼 호세아는 사랑의 노래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가는 생각해볼 여지가 남아있다. 남편을 버리고 딴 남자에게 마음과 몸을 팔아버린 여인을 사랑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말이다. 철저히 가부장적 사회였던 2500년 전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은 이 구절을 통해 자신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드러내신다. 이스르엘(Jezreel) 호세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한 여인을 데려와 결혼을 하라 하신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여인은 '음란한 여인'이다. 왜 하필이며 그 여자 이어야 하는가? 하지만 호세아는 순종한다. 여자는 아이를 낳는다. 아이의 이름을 이스르엘(Jezreel)이라 하신다. 이스르엘(Jezreel)의 뜻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이다. 파종할 때 농부가 바구니에서 씨를 한움큼 쥐고 밭에 뿌릴 때 흩으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참을 슬픈 이야기다. 로루하마(לֹא רֻחָמָה) 또 임신하여 두 번째 아들을 낳는다. 이번에는 '로루하마'라 하신다. '루하마(רֻחָמָה)'는 긍휼히 여김을 받다는 뜻이다. 여기에 부정어인 '로'가 붙었다. 그러므로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비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선언하신다.  로암미(לֹא עַמִּי) 또 한 명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로암미'라 부른다. '암미'는 내 백성이다. '로'는 역시 부정어이다. 로암미의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실 것이다.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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