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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셋째주 주일 대표기도문

4월 셋째주일 대표기도문 계절의 문을 여닫으시며 우리의 날들을 주의 손으로 엮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4월 셋째 주일, 봄빛이 한층 깊어져 연둣빛 잎들이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이 아침에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 끝에 새순이 돋아나듯,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굳은 마음 끝에도 새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옵소서. 꽃이 피고 바람이 스치고, 땅이 향기로 깨어나는 이 계절 속에서, 우리 영혼도 주님 앞에 깨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옵소서.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면서도 일상 속에서는 쉽게 낙심하였고, 주님의 선하심을 믿는다 하면서도 작은 일에 불평과 원망이 먼저 나왔습니다. 사랑으로 부름받았으나 판단과 비교로 서로를 아프게 했고, 용서해야 할 마음을 붙잡은 채 스스로를 의롭다 여겼습니다. 기도하기보다 걱정하기를 더 익숙해 했고, 말씀보다 세상의 소리에 더 민감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새 마음을 부어 주셔서 오늘의 예배가 습관이 아니라 회복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봄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을 가르칩니다. 어제의 찬바람이 남아 있어도 봄은 오고, 가지가 앙상해 보여도 그 안에는 생명이 준비되어 있듯이, 우리의 삶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무거워도 주님 안에서 새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조급함을 거두어 주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을 주옵소서. 눈에 보이는 변화가 더딜 때에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작은 순종을 통해 주님의 나라가 자라난다는 진리를 붙들게 하옵소서. 주님, 이 봄에 진행되는 춘계대심방을 주의 은혜로 붙들어 주옵소서. 목회자의 발걸음마다 주께서 앞서 가시고, 방문하는 가정마다 하늘의 평강이 임하게 하옵소서. 문을 열고 인사를 나누는 순간부터, 말과 침묵 사이에 주님의 위로가 흐르게 하시며, 가정마다 숨겨진 상처와 오랜 눈물이 주님 앞에 안전하게 놓이게 하옵소서...

로마서 1장 14절 빚진 자

 빚진 자의 고달픔을 아는 자가 몇이나 될까? 대출이 일반화된 요즘은 수많은 사람들이 빚진 자들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빚진 자는 자발적 대출자들이 아니다. 아니, 꼬박꼬박 빛을 갚을 능력이 되는 사람은 빚진 자의 심령을 잘 알지 못하니다. 고대 세계에서 빚은 무서운 것이었다. 수메르 문명 시대 이자율은 30%가 넘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 가난한 자들의 이자율은 최소 20% 이상이었다. 그런데 놀갑게도 현대의 카드 이자율은 18%이다. 말이 18%지 이자의 이자가 붙어 일년이 넘어가면 200%가 넘기도 한다. 실로 엄청난 이자율이 아닐 수 었다. 이러한 이자율은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상환 능력이 되거나 담보가 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5-10% 정도에서 대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우리나라도 30년 전만 해도 적금 이자율이 18%가 넘었다. 반대로 대출 이자율은 어땠을까? 1970년대 평균 이자율은 23%였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이자율이다. 1965년 예금 이자율이 30% 였다고 믿을까? 요즘처럼 대출 이자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한 달 동안 죽도록 일하고 대부분의 돈을 이자 갚는데 다 쓰고 만다. 몇 년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빚, 정말 무서운 존재다.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로 소개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빚진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 자, 어리석은 자들이다. 요즘말로하면 남녀노소빈부귀천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빚은 복음의 빚이다. 바울은 자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인들은 모두 '빚진 자'(롬 8:12)라고 말한다. 빚진 자는 갚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려 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빚이다. 빚을 졌다는 말은 빚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빚은 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울에게 빚을 준 것일까? 바...

호세아 2:14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광야에서 나눈 사랑의 밀담 호 2: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세아의 결혼 호세아는 사랑의 노래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가는 생각해볼 여지가 남아있다. 남편을 버리고 딴 남자에게 마음과 몸을 팔아버린 여인을 사랑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말이다. 철저히 가부장적 사회였던 2500년 전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은 이 구절을 통해 자신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드러내신다. 이스르엘(Jezreel) 호세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한 여인을 데려와 결혼을 하라 하신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여인은 '음란한 여인'이다. 왜 하필이며 그 여자 이어야 하는가? 하지만 호세아는 순종한다. 여자는 아이를 낳는다. 아이의 이름을 이스르엘(Jezreel)이라 하신다. 이스르엘(Jezreel)의 뜻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이다. 파종할 때 농부가 바구니에서 씨를 한움큼 쥐고 밭에 뿌릴 때 흩으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참을 슬픈 이야기다. 로루하마(לֹא רֻחָמָה) 또 임신하여 두 번째 아들을 낳는다. 이번에는 '로루하마'라 하신다. '루하마(רֻחָמָה)'는 긍휼히 여김을 받다는 뜻이다. 여기에 부정어인 '로'가 붙었다. 그러므로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비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선언하신다.  로암미(לֹא עַמִּי) 또 한 명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로암미'라 부른다. '암미'는 내 백성이다. '로'는 역시 부정어이다. 로암미의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실 것이다.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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