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4절 빚진 자

 빚진 자의 고달픔을 아는 자가 몇이나 될까? 대출이 일반화된 요즘은 수많은 사람들이 빚진 자들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빚진 자는 자발적 대출자들이 아니다. 아니, 꼬박꼬박 빛을 갚을 능력이 되는 사람은 빚진 자의 심령을 잘 알지 못하니다. 고대 세계에서 빚은 무서운 것이었다. 수메르 문명 시대 이자율은 30%가 넘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 가난한 자들의 이자율은 최소 20% 이상이었다. 그런데 놀갑게도 현대의 카드 이자율은 18%이다. 말이 18%지 이자의 이자가 붙어 일년이 넘어가면 200%가 넘기도 한다. 실로 엄청난 이자율이 아닐 수 었다. 이러한 이자율은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상환 능력이 되거나 담보가 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5-10% 정도에서 대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우리나라도 30년 전만 해도 적금 이자율이 18%가 넘었다. 반대로 대출 이자율은 어땠을까? 1970년대 평균 이자율은 23%였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이자율이다. 1965년 예금 이자율이 30% 였다고 믿을까? 요즘처럼 대출 이자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한 달 동안 죽도록 일하고 대부분의 돈을 이자 갚는데 다 쓰고 만다. 몇 년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빚, 정말 무서운 존재다.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로 소개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빚진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 자, 어리석은 자들이다. 요즘말로하면 남녀노소빈부귀천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빚은 복음의 빚이다. 바울은 자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인들은 모두 '빚진 자'(롬 8:12)라고 말한다. 빚진 자는 갚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려 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빚이다. 빚을 졌다는 말은 빚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빚은 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울에게 빚을 준 것일까? 바...

호세아 2:14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광야에서 나눈 사랑의 밀담 호 2: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세아의 결혼 호세아는 사랑의 노래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가는 생각해볼 여지가 남아있다. 남편을 버리고 딴 남자에게 마음과 몸을 팔아버린 여인을 사랑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말이다. 철저히 가부장적 사회였던 2500년 전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은 이 구절을 통해 자신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드러내신다. 이스르엘(Jezreel) 호세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한 여인을 데려와 결혼을 하라 하신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여인은 '음란한 여인'이다. 왜 하필이며 그 여자 이어야 하는가? 하지만 호세아는 순종한다. 여자는 아이를 낳는다. 아이의 이름을 이스르엘(Jezreel)이라 하신다. 이스르엘(Jezreel)의 뜻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이다. 파종할 때 농부가 바구니에서 씨를 한움큼 쥐고 밭에 뿌릴 때 흩으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참을 슬픈 이야기다. 로루하마(לֹא רֻחָמָה) 또 임신하여 두 번째 아들을 낳는다. 이번에는 '로루하마'라 하신다. '루하마(רֻחָמָה)'는 긍휼히 여김을 받다는 뜻이다. 여기에 부정어인 '로'가 붙었다. 그러므로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비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선언하신다.  로암미(לֹא עַמִּי) 또 한 명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로암미'라 부른다. '암미'는 내 백성이다. '로'는 역시 부정어이다. 로암미의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실 것이다.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

요한복음 3장 16절

이미지
성경 구절 요한복음 3:16 한글 성경 개역4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어 성경 NIV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Greek NT Οὕτως γὰρ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ὥστε 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 ἔδωκεν, ἵνα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μὴ ἀπόληται ἀλλ’ ἔχῃ ζωὴν αἰώνιον. [묵상]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 우리는 여기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세상은 나쁘고, '하나님의 나라는 좋다'라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세상은 하나님의 특별한 어떤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세상은 κόσμος입니다. 이 단어는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실 때 세상 나라를 주겠다고 할 때 사용한 단어이며(마 4:8), 산상 수훈에서 '세상의 빛'(마 5:14)으로 소개할 그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사단이 지배하고, 악인들이 우글거리며,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바로 그 세상입니다. 세상을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세상은 악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 또한 그 세상에 속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듯 우리도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빠지면 안 됩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그럼 하나님께서 세상...

주일 대표 기도문 6월 기도문 모음

이미지
6월 대표기도문   6월 달에 드리는 대표 기도문입니다. 기도가 있지만 주일 대표 기도문과 새벽, 그리고 그 외 기도문을 한 곳에 모아 정리했습니다. 주일 대표 기도문 6월 첫 주 참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이 하루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주여, 저희들 가운데 충만한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오늘은 6월 첫째 주일입니다. 6월이 시작되는 첫 주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저희들을 예배로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언제나 참 소망이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지난 주간 저희들의 죄악들을 회개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내 맘으로 살아갔던 우리들의 악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직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죄를 씻으사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복되신 주님, 저희에게 새로운 한 달을 주시사 또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은혜가 놀랍습니다. 하나님, 저희는 늘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자비의 주님, 저희에게 긍휼을 베푸사 6월도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최선으 다해 살아가는 한 달이 되기를 원합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까요? 오직 주님만 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셨고,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자비의 주님, 우리가 항상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대한민국을 지켜 주시고, 어떤 나라에도 점령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특별히 어리석은 북한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한 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부르던 평양은 사람을 우상으로 섬기는 어리석은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비의 하나님, 이 나라가 다시는 공산당에 속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해지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이 나라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주일 대표 기도문 6월...

태초에 하나님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어떤 타협이나 설명을 하지 않고 선언한다. 이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참 불편하다. 처음부터 이상과 싸우고, 타협하지 않는다. 거절하든지 믿든지 둘 중의 하나다. 난 최근 들어 성경이 진짜 무엇인지를 많이 고민한다. 아니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믿든지 거절하든지 선택을 해야한다. 성경이 좀더 친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힘든 시간을 많이 보냈다. 꿈속에서라도 하나님을 뵙고 싶었다. 예수님이 꿈속에서 나타났으면 제발 한 번 만이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바램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창세기는 도대체 누가 기록한 것일까? 무슨 마음으로 기록한 것일까? 역사적 고증을 봐도 최소 3000년이 넘은 오래 전에 누가 도대체 기록한 것일까? 참으로 기이할 뿐이다. 오늘, 예전에 접었던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다.  다시 말이다.